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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종교영화 리뷰] 세상은 묻는다 “신을 증명해봐”

[종교영화 리뷰] 세상은 묻는다 “신을 증명해봐”




2014년 할리우드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에서 소재를 얻은 영화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는 것이다. ‘노아(Noah)’ ‘선오브갓(Son of God; 하나님의 아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Exodus: Gods and Kings)’이 올해 개봉했거나 개봉할 예정인 영화로 각각 노아의 방주, 예수의 일생, 출애굽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가인과 아벨, 본디오 빌라도에 관한 영화 등이 제작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 온라인판은 이 같은 할리우드의 바람에 대해 “성경에는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극적인 사건들이 있다. 게다가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이고, 성경을 읽지 않아도 알 만한 영웅적인 캐릭터들이 많다”며 그간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들어 안정적으로 흥행을 보장받았던 할리우드에서 성경을 모티브로 한 영화를 많이 제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은 영국에서 건너간 개신교들이 세운 나라로 현재도 기독교인이 수천만 명에 이르기에 할리우드는 이들을 잠재적인 관객으로 보고 있으며, 성경 해석에 대한 논란조차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나타낸다고 포브스지는 전했다.

성경을 소재로 한 영화와 함께 실화를 바탕으로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도 개봉해 눈길을 끈다. 기독교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갓즈 낫 데드(God's Not Dead; 신은 죽지 않았다)’와 2010년 출판된 동명(同名)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천국에 다녀온 소년(Heaven Is for Real)’은 저예산영화임에도 박스오피스에 수주간 상위권에 랭크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블록버스터 상업영화 속에서도 기독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신앙인들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갓즈 낫 데드’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존재하면 증명해보라고 말하는 세상의 무신론자 앞에서 그럼에도 신은 살아있음을 항변한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세상의 조롱과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았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대학신입생 조쉬 휘튼이 무신론자 철학과 교수 제프리 라디슨에 대항해 ‘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은 흥미롭게 펼쳐진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증거할 수도 없고 창조의 비밀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면서도 “신이 싫다”고 원망하는 교수에게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는 자를 싫어하고 원망할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신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인상 깊다. 이 흥미로운 변론 과정은 많은 학생들이 신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천국은 정말 있을까’ 신앙인의 자문(自問)

뉴욕타임스에서 무려 175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실화 ‘천국에 다녀온 소년’은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임페리얼에 소재한 크로스로드 웨슬리언 교회(Crossroads Wesleyan Church)의 목사 토드 버포(Todd Burpo)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마을 주민들을 도우며 성실하게 사는 가장이다. 어느 날 네 살인 아들 콜튼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며 사경을 헤매는 사건이 발생하고 콜튼은 마을 사람들의 기도 속에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그 후 콜튼은 토드에게 수술 받는 동안 “천국에 다녀왔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토드는 아이가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환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들을수록 진짜라는 확신이 들며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콜튼은 수술 받는 동안 몸에서 빠져 나와 자신이 수술을 받는 장면도,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에게 전화해 기도를 부탁하는 장면도, 아버지인 토드가 홀로 울분을 참지 못해 예수님에게 아들을 살려 달라고 소리를 치는 장면도 모두 봤다고 이야기한다. 토드가 어릴 적 많이 따랐던 증조할아버지와 태어나기 직전 어머니 뱃속에서 죽었던 누나까지 천국에서 만났다고 하자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 콜튼이 알지 못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실제 보고 경험한 것을 말하듯 아주 명확하고 편안하게 천국에 대해 말한다. 토드는 아들의 말을 믿지만 강단에서 이 이야기를 전할 때는 주저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콜튼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에까지 전해지자 마을 주민들이 보인 반응도 마찬가지다.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던 그들이지만 사실 마음속에 갈등하던 문제들이 있었다. ‘천국은 정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도 그중 하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때론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콜튼이 천국에 갔다 왔다는 말을, 그 아이가 묘사하는 천국이 진짜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영화는 천국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으로 몰입감을 높이지만, 정작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국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다. 토드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 친구의 용기, 간호사나 의사의 손,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 같은 걸로 우리는 이미 천국을 보지 않았느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미 삶 속에서 천국을 엿보고 증오와 두려움의 지옥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고 수없이 기도하면서도 그것을 과연 제대로 듣고 믿었는지 반문한다.

영화는 실화의 내용을 잔잔하게 표현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신앙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로 신앙인뿐 아니라 비신앙인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흥미로운 장면은 토드가 교회에서 설교하는 모습이다. 격식과 권위를 벗고 편안한 옷차림에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자료 출처]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696

2013년 8월 13일 화요일

신천지, 하늘 사람과 세상 사람

하늘 사람과 세상 사람


본문 : 빌 3:20-21 (요 15:18-27)

하늘의 사람과 세상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하늘의 사람은 하나님의 씨로 하늘에서 났고, 그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창 1:26)인 신과 같고 변화산에서 본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과 같다(마 17장 참고). 그리고 세상 사람은 세상 곧 땅에서 났고, 땅의 형상 곧 육신의 모양이다.

하늘에서 난 자는 하늘의 말을 하고 들으며, 세상에서 난 자는 세상의 말을 하고 듣나니, 이로써 하늘에서 난 자와 세상 곧 땅에서 난 자가 다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다(요 14:6). 그리고 ‘이 길과 진리와 생명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 요한일서에 기록된바 ‘태초의 말씀이 예수님’이고, 요한복음 1:1-14에 본바 길도 진리도 생명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계 3:21), 길과 진리와 생명 곧 말씀인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께 갈 수 있다. 이는 곧 예수님이 길과 다리가 되어 하나님께 가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없으면 길도 진리도 생명도 다리도 없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셨고, 계시록 3:20에는 예수께서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고 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하는 자이다.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면 그리스도같이 길과 진리를 알 것이며, 주께로부터 인도받는 자가 된다. 또 예수님같이 말씀이 된다.
사람들이 모양을 갖추어 형식적으로 믿는다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과 다르며, 외인(外人)에 불과하다.

천국과 세상과의 차이는 크며, 하나님의 아들들과 땅의 딸들과의 차이도 크다. 이는 근본에서부터가 다르다. 이 근본은 하늘의 씨와 땅 곧 세상의 씨에서부터 다르다. 만일 하늘의 씨로 난 자가 하늘을 배도하고 땅에 속하여 땅의 딸들과 하나가 된다면 같은 땅 곧 육체가 된다, 아담같이. 하늘의 사람과 땅의 사람은 그 근본이 각각 씨에서부터 시작된다. 땅에서 난 자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말을 들을 것이며, 세상을 따를 것이다. 하늘에서 난 자는 하늘 곧 천국을 사랑하고 천국의 말을 듣고 천국을 따르게 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고 하셨다.
암탉은 수탉의 씨를 받아 알을 낳아 모으고, 21일 간 품어 부화시켜 보호하고, 새끼들을 자기 음성으로 따르게 하고 보호하며, 먹이를 찾아 먹이며, 자기 새끼의 음성을 알고 하나하나 다 알며 기른다. 새끼는 자기 어미와 그 음성을 알고 따르며, 보이지 않으면 찾고, 자기 새끼의 음성을 아는 어미는 새끼가 부르면 급히 달려간다. 병아리는 오직 어미만 알고 찾고 따르며, 어미는 새끼를 보호하고 먹이며 기른다. 추운 밤이 되면 새끼를 날개 속에 품어 보호한다. 새끼는 어미의 품속 날개 안으로 들어가며, 어미 등 위에 올라가기도 한다.
예수님은 새끼 잃은 어미 닭같이 수차 우리를 품으려 했으나, 병아리보다 못한 사람이 원치 않았다고 하셨다. 사람은 자기가 병아리보다도 못한 것을 알 것인가?

이사야 1장에 하나님은 애통한 심정으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다. 그리고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여.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하셨다.
또 예레미야는 애가(哀歌)에 이 사실을 기록하였으니, 아담의 범죄함과 같고 마귀 신에게 사로잡힌 자는 그 사상부터 달라진 것이다.

오늘날 주 재림 때의 사건 계시록 13장과 17장, 18장에 기록된 것을 본바, 영적 이스라엘이 주께 배도하고 이방 신의 목자를 따랐고, 그 수는 만국이었고, 귀신의 나라 과실 곧 음행의 포도주를 먹고 만국이 무너졌으며, 이 만국이 마귀와 결혼했다 하였으니 하나님이 아닌 마귀와 하나가 된 것이다.
이때 주께서 보내신 대언의 사자가 사로잡힌 백성이 있는 곳에 와서 빼내고 불러내며 도둑같이 추수하는 일이 있다. 이것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는, 재림 때의 구원의 역사이다.
오늘날 만국의 목자들이 초림 때와 같이 대언의 사자에게 핍박을 일삼고 총공격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긴 자가 있으니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주께서 함께하심으로 신약을 이루고, 하나님의 새 나라 12지파를 창설하고, 마귀의 나라 바벨론을 심판하고 있다.

이상으로 구약과 신약 시대, 초림과 재림 때에 일어난 배도 행위를 살펴보았다.

마귀와 하나가 된 자들이 어찌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낸 자를 알겠는가? 오직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알 것이다.
하나님은 요 10장에 ‘자기 양은 자기 주인(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르고 타인의 음성은 자기 주인의 음성이 아니므로 들어도 따르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는 누구에게서 났는가에 따라서, 그 낳아 준 주인을 따르게 된다.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 자는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일 것이요, 그 음성을 알지 못하는 타인 소속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씨로 난 자는 진리의 성령의 음성 곧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를 것이다. 신약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음성이다.

사람이 창조하고 호칭한 지상 교단에서는 사람의 말이 나오고, 하늘에서 창조하고 호칭한 하늘의 성전 증거장막에서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나온다. 성경의 말씀(약속)대로 창조된 것은 모세 때의 장막같이 하늘의 것이며, 세상 목자들이 자기 뜻에 맞추어 창조하고 호칭한 것은 세상의 것일 뿐이다.

어디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백성이겠는가?
진리의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민이 되자. 아멘.


[자료 출처]
http://cafe.daum.net/scjschool/E3qZ/547